화장품 전성분표를 제대로 읽기 시작한 건 트러블이 났을 때부터였습니다. 사용하던 토너를 바꾼 직후부터 볼 옆에 좁쌀 같은 게 올라왔고,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어서 처음으로 성분표를 진지하게 들여다봤습니다. 그 전까지는 앞면 마케팅 문구만 믿고 샀던 거라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분부족지성 피부라면 성분표에서 먼저 봐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그 순서를 직접 시행착오를 거치며 정리해봤습니다.
성분표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 구조부터 파악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성분표가 그냥 성분을 쭉 나열한 목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판매되는 화장품은 화장품법 시행규칙에 따라 성분을 함량이 많은 순서대로 표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앞에 적힐수록 그 제품에서 비중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정제수(Purified Water)가 가장 앞에 적혀 있는 제품이 많은 건, 대부분의 액상 화장품에서 물이 베이스로 가장 많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예외가 있습니다. 1퍼센트 이하로 들어간 성분, 그리고 착향제와 착색제는 함량 순서 없이 임의로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분표 앞쪽 다섯에서 일곱 줄 정도는 함량 순서가 맞지만, 그 이후로는 순서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고 보면 됩니다. 제가 처음에 성분표 뒤쪽에 향료가 적혀 있다고 “별로 안 들었겠지” 했다가 나중에 그게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INCI(International Nomenclature of Cosmetic Ingredients), 즉 국제 화장품 성분 명명법이라는 것도 알아두면 유용합니다. INCI란 전 세계 화장품 성분에 표준 영문 명칭을 붙이는 체계인데, 한글 표기는 브랜드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도 영문 INCI 명은 동일하게 쓰입니다. 두 제품을 비교할 때 영문을 기준으로 보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이걸 알고 나서 성분 비교가 훨씬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용량이 50ml 이하인 제품은 일부 성분 표시를 생략할 수 있습니다. 샘플이나 트라이얼 사이즈를 먼저 써보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샘플 성분표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본품 성분표는 꼭 따로 확인하는 게 맞습니다.
수부지가 성분표 앞쪽에서 먼저 찾는 것이 있습니다
수분부족지성, 줄여서 수부지는 피지 분비는 많으면서도 표면 수분은 빠르게 날아가는 피부 타입입니다. 번들거리는데 당긴다는 이 모순적인 상태 때문에 오일리한 제품도 안 되고, 수분이 없는 제품도 안 됩니다. 그래서 성분표 앞쪽에서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보습 성분의 구성입니다.
보습 성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휴멕턴트(Humectant)인데, 휴멕턴트란 공기 중이나 피부 안쪽에서 수분을 끌어당겨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는 성분입니다. 글리세린(Glycerin), 부틸렌글라이콜(Butylene Glycol), 프로판다이올(Propanediol), 히알루론산(Hyaluronic Acid)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미국 피부과학회(AAD)에서도 글리세린은 보편적인 보습 성분으로 꼽고 있는데, 실제로 거의 모든 보습 제품에 들어 있어서 성분표 앞쪽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폐색성(Occlusive) 성분입니다. 폐색성 성분이란 피부 표면에 얇은 막을 만들어 수분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수분을 끌어오는 것과 붙잡아두는 것,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보습이 제대로 된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세라마이드(Ceramide)나 콜레스테롤(Cholesterol), 지방산 계열의 성분이 같이 들어 있는 제품은 피부 장벽도 챙겨주는 구성이라 수부지에게는 한 가지 성분만 강조한 제품보다 훨씬 잘 맞는다는 걸 직접 써보며 느꼈습니다.
제가 성분표 앞 다섯 줄에서 확인하는 체크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정제수 다음 자리에 글리세린, 부틸렌글라이콜 같은 휴멕턴트 성분이 두세 가지 이상 적혀 있는지 확인합니다.
-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같은 장벽 성분이 들어 있는지 봅니다. 성분표 뒤쪽에 있다면 1퍼센트 이하일 가능성이 있어 기대치를 조정합니다.
- 나이아신아마이드(Niacinamide)나 판테놀(Panthenol) 같은 효능 성분이 있다면 그 위치도 확인합니다. 앞쪽에 있을수록 비중이 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순서로 보면 한 제품의 보습 구성을 파악하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자극 성분은 앞쪽뿐 아니라 뒤쪽도 봐야 합니다
보습 성분을 확인했다면 다음은 자극 가능성이 있는 성분을 훑는 차례입니다. 이 부분은 성분표 앞쪽만 볼 게 아니라 뒤쪽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특히 보호막이 약해진 시기에는 평소에 괜찮았던 성분도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서 평상시보다 더 꼼꼼하게 보는 편입니다.
알코올(Alcohol Denat., Ethanol, SD Alcohol)이 성분표 앞쪽에 적혀 있다면 그 제품에서 알코올 비중이 상당하다는 신호입니다. 알코올은 산뜻한 발림감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지만, 자주 쓰면 피부 장벽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수부지 입장에서는 수분이 빠져나갈 구멍이 더 커지는 셈이라 알코올이 앞쪽에 적힌 제품은 일단 보류합니다. 다만 세틸알코올(Cetyl Alcohol)이나 스테아릴알코올(Stearyl Alcohol) 같은 지방 알코올(Fatty Alcohol)은 다른 성분입니다. 지방 알코올이란 식물성 유래의 고급 알코올로 보습과 텍스처 안정에 도움을 주는 성분이어서, 이름에 ‘알코올’이 들어간다고 무조건 피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에 이걸 헷갈려서 좋은 크림을 몇 번 걸러낸 적이 있습니다.
향료(Fragrance, Parfum) 표시도 확인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식약처가 지정한 알레르기 유발 성분 25종이 일정 농도를 넘으면 향료와 별도로 성분명을 표기해야 합니다. 씻어내지 않는 제품은 0.001퍼센트, 씻어내는 제품은 0.01퍼센트 초과 시 의무 표기입니다. 향료 표시 뒤에 리모넨(Limonene), 리날룰(Linalool), 시트로넬올(Citronellol), 제라니올(Geraniol), 벤질알코올(Benzyl Alcohol) 같은 이름이 추가로 적혀 있다면 알레르기 유발 가능 성분이 일정 농도 이상 들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정 향 성분에 자극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이 자리를 특히 꼼꼼히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코메도제닉(Comedogenic) 가능성이 있는 성분도 체크합니다. 코메도제닉이란 모공을 막아 면포나 여드름을 유발할 수 있는 성질을 뜻합니다. 코코넛오일(Coconut Oil), 코코아버터(Cocoa Butter), 이소프로필미리스테이트(Isopropyl Myristate) 같은 성분이 성분표 앞쪽에 있다면 피지 분비가 활발한 수부지 피부에서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조건 피하라는 게 아니라, 한 번 패치 테스트를 해본 다음 결정하는 게 안전합니다. 일반적으로 코메도제닉 지수가 낮다고 알려진 성분이어도 개인 피부에 따라 반응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제 경험상 이건 본인이 직접 확인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성분표를 완벽하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정확한 함량도 모르고, 성분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까지 파악하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앞쪽 다섯 줄에서 보습 성분 구성을 확인하고, 알코올과 향료, 코메도제닉 성분의 위치를 훑는 것만으로도 제품 선택의 정확도가 확실히 올라갔습니다. 성분표를 잘 읽는다는 건 전부를 아는 게 아니라 본인 피부에 중요한 몇 가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 시작점으로, 오늘 쓰는 제품 하나의 성분표 앞쪽 다섯 줄만 먼저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