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크림을 몇 통이나 샀는데 한 통도 다 못 쓴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저는 한동안 그랬습니다. 서랍 안에 반 넘게 남은 선크림이 세 개씩 쌓여 있었어요. 수부지(수분과 피지가 동시에 많은 복합성 피부) 특유의 고민이 선크림에서는 유독 심하게 터졌고, 실패 원인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한 통씩 끝까지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선크림을 다른 화장품과 같은 기준으로 고르면 안 되는 이유
처음 선크림을 고를 때 저는 그냥 “사용감이 좋으면 좋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향이 좋고, 발랐을 때 산뜻하고, 끈적이지 않으면 합격이었어요. 근데 그 기준이 선크림한테는 잘 안 맞더라고요. 왜냐면 선크림은 매일 빠짐없이 써야 하는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앰플이나 영양크림은 컨디션에 따라 하루 이틀 건너뛰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외선 차단제(Sunscreen)는 다릅니다. 자외선 차단제란 UVA와 UVB를 포함한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매일 사용해야 하는 기초 제품입니다. 흐린 날에도 UVA는 구름을 통과하고, 실내에서도 유리창을 통해 일부 도달하기 때문에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 바르는 게 권장됩니다. 실제로 미국 피부과학회(AAD)는 실내 생활을 하더라도 자외선 차단제를 매일 도포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매일 써야 한다는 건 첫날 사용감이 좋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첫인상이 가볍게 느껴지던 선크림도 사흘쯤 지나면 피부 표면에 미세하게 막이 쌓이는 느낌이 나기도 했어요. 반대로 처음엔 좀 무겁다 싶었는데 일주일쯤 매일 바르고 나니 오히려 피부가 안정되는 제품도 있었습니다. 첫인상만 보고 선크림을 결정했던 게 제가 반복해서 실패했던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무기자차와 유기자차, 차단 방식이 다르다는 걸 늦게 알았습니다
선크림을 여러 개 써봤는데도 왜 어떤 건 자극이 오고 어떤 건 괜찮은지 몰랐던 시기가 꽤 길었습니다. 알고 보니 선크림에는 자외선을 막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이 차이를 모르고 그냥 SPF 숫자만 보고 골랐던 게 두 번째 실패 이유였어요.
첫 번째는 무기자차(물리적 자외선 차단제)입니다. 무기자차란 징크옥사이드(Zinc Oxide)나 티타늄디옥사이드(Titanium Dioxide) 같은 미네랄 성분이 피부 위에서 자외선을 반사시키는 방식으로 차단하는 제품을 말합니다. 피부 속으로 흡수되지 않고 표면에서 물리적으로 막아주는 구조입니다. 단점은 발랐을 때 백탁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제형이 묵직한 편이라는 거예요.
두 번째는 유기자차(화학적 자외선 차단제)입니다. 유기자차란 피부에 흡수된 유기 합성 성분이 자외선 에너지를 흡수해서 열 등의 다른 형태로 전환시키는 방식으로 차단하는 제품입니다. 흡수가 빠르고 백탁이 거의 없어 사용감이 가볍다는 게 장점이지만, 피부에 흡수되는 구조라 예민한 피부에 자극이 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유기자차만 썼는데 어느 시기부터 자극이 잦아지더니 작은 트러블이 반복됐어요. 그때 무기자차로 바꿨더니 한동안 피부가 잠잠해졌습니다. 반대로 무기자차를 오래 쓰다 보니 백탁이 신경 쓰여서 다시 유기자차로 돌아간 적도 있었고요. 제 경험상 어느 쪽이 무조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본인 피부가 어느 방식에 더 잘 반응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선크림에서 실패했던 세 가지 포인트를 솔직하게 정리하면
한참 헤매고 나서 돌아보니 실패 이유가 여러 포인트로 겹쳐 있었습니다. 하나씩 꼽아보면 이렇습니다.
- 첫인상 사용감만 보고 골랐던 점: 매장에서 손등에 발라보고 가볍고 산뜻하면 무조건 좋은 제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손등과 얼굴 피부의 환경 자체가 다른데도요. 매일 누적되는 제품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거예요. 지금은 최소 일주일은 매일 발라봐야 제대로 판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차단 방식을 무시하고 SPF 지수(Sun Protection Factor)만 봤던 점: SPF 지수란 UVB를 차단하는 강도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SPF 50이라도 무기자차냐 유기자차냐에 따라 사용감과 피부 반응이 전혀 달라지는데, 그 차이를 모르고 매번 다른 방식의 제품을 번갈아 썼습니다. 어느 방식이 제 피부와 맞는지 기준이 안 잡힐 수밖에 없었어요.
- 피부 상태가 바뀌어도 같은 선크림을 고집했던 점: 환절기에 피부 장벽(Skin Barrier)이 약해진 상태에서도 평소 쓰던 선크림을 그대로 썼습니다. 피부 장벽이란 외부 자극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각질층의 방어막을 뜻합니다. 장벽이 약해진 시기에 강한 차단 성분이 들어간 선크림을 바르면 트러블이 더 심해질 수 있는데, 저는 그걸 모르고 계속 같은 제품을 밀어붙였어요. 자극이 올라온 날 선크림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피부 반응이 달라진다는 걸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에 원인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가지만 고쳐서는 답이 안 보였던 거예요. 솔직히 이건 좀 허탈할 정도로 단순한 이유들이었는데, 당시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선크림을 고를 때 실제로 쓰는 기준 세 가지
실패를 거듭하면서 정리된 기준이 있는데, 다른 케어 제품을 고를 때와는 확실히 다른 시각이 필요했습니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라면 한번 참고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 일주일 동안 매일 발라본 뒤에 판단합니다. 첫날 사용감은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사흘쯤 지나면 누적되는 느낌이나 피부 반응이 드러나기 시작하거든요. 반대로 처음엔 다소 묵직했던 제품이 며칠 지나면서 오히려 편안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판단하는 게 훨씬 정확했어요.
둘째, 다른 케어 제품과의 조합 사용감을 봅니다. 보습크림 위에 발랐을 때 밀리거나 뭉치는 선크림은 매일 쓰기 어렵습니다. 선크림이 스킨케어의 마지막 단계에 올라가는 제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독 사용감만이 아니라 앞 단계 제품들과의 궁합을 같이 봐야 합니다. 실제로 보습제를 바꿨더니 기존에 잘 안 맞던 선크림이 괜찮아진 경우도 있었어요.
셋째, 선크림을 상황별로 두 가지 이상 준비해둡니다. 평소엔 가벼운 선크림을 쓰고, 피부가 예민해진 날엔 자극이 적은 쪽으로 알려진 선크림으로 교체하고, 야외 활동이 많은 날엔 차단력이 높은 제품을 씁니다. 한 가지로 모든 상황을 다 커버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어느 상황에도 딱 맞는 제품을 못 찾았던 거더라고요. 미국 피부암재단(Skin Cancer Foundation)에서도 활동 강도와 환경에 따라 차단제를 다르게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선크림을 고르는 가장 좋은 기준은 결국 매일 무리 없이 바를 수 있느냐입니다. 완벽한 제품을 찾느라 며칠씩 건너뛰는 것보다, 70점짜리라도 매일 꾸준히 바르는 게 피부에는 더 낫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지금 서랍 안에 반쯤 남은 선크림이 있다면 버리기 전에 일주일만 다시 매일 발라보시는 걸 권합니다. 생각보다 잘 맞는 제품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